죽으러 왔다가 살러 온 사람-공황장애
2009.05.14 06:26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일을 계획 할찌라도 그 걸음을 인도 하시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위의 말씀을 상기 하면서 지금 이 곳 벧엘 동산에 나와 나의 가족이 이곳 사람이 되었다는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2008년 9월 29일. 새벽 4시 휴대 전화 문자 메시지 도착 신호가 나의 잠을 깨운다.
예감이 이상하여 일어나 확인해 보니 전날 밤 자정께 충남 연기에 사는 내 마음의 고향같은 친구 장로님의 갑작스런 교통사고 사망 소식이 알려져 왔고, 나는 큰 충격을 받고 온 몸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아침에 허둥지둥 준비를 하고 차를 운전하여 출발 하려고 했으나 마음이 불안 하여 열차를 이용 하기로 했다.
의정부 역에서 열차표를 예매하고, 전철로 서울역에 내려 보니 열차 출발 시간 5분전.
급하게 계단을 뛰어 올라 개찰구를 통해 열차로 가서 앉았는데 잘못 탔다.
이 열차가 아니고 건너편에 있는 새마을 열차다.
다시 계단을 뛰어 올라 겨우 출발 열차 좌석에 앉았는데, 갑자기 눈앞에 흰 스크린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흰 화면만 보이면서 심장 박동이 심해지다가 몇 초 정도 졸도 현상을 경험했다.
나는 이때 죽는 줄 알고 하나님께 순간적인 기도를 드린다. 주님 살려주세요!!
정신이 들고 보니 머리가 멍 하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고, 열차는 이미 출발한 상태고, 옆 좌석에는 아무도 없었다.
목적지에 도착 하여 문상을 하며 어린 자식들 하나도 시집 장가 들이지 못한 친구의 영전 앞에 꼭 내가 당한 사고인양 슬피 울었다.
돌아오는 차편에서도 약간의 두통을 느꼈다.
그때 이후로 힘든 일을 할 때마다 심장이 심하게 뛰며 어지러운 증세가 자꾸 반복 되었다.
그 후 한달 쯤 평상시대로 곡괭이로 밭을 일구는데 이날은 심장이 심하게 뛰고 어지러운 증세가 또 오는 것이다.
마음이 불안해 져서 겨우겨우 그 일을 마치고 들어왔는데 그날 저녁에도 심장이 심하게 뛰는것 같고, 불안한 마음이 자꾸 들어서 동네 병원 응급실에 가서 약간의 진정제를 투여 받고 1시간 정도 지난 후 귀가 했다.
그날은 금요일 저녁이었다.
다음날 안식일에 안식일 학교 교과를 지도 하던 중 계속되는 불안과 심장 박동이 예사롭지 않다.
반생 중에 의사가 있어서 증세를 말했더니 심근경색 증세 같단다.
그 말을 들으면서 불안이 파도처럼 몰아쳐 오는데 감당할 수가 없었다.
더 이상 교회에 있을 수 없어서 집에 가서 즉시 준비 하여 병원 응급실로 갔는데 응급실의 검사 결과는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희안하게도 응급실에 오면 증세가 거짓말처럼 없어지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날 저녁 또 다시 심장 발작이 일어나며 곧 죽을 것 같은 불안으로 나는 어쩔 줄 몰라 하고, 온 가족은 당황 하여 급히 119를 불러서 응급실로 가는데 가는 도중에 진정이 되었으며, 응급실에서 밤새 각종 검사를 받은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단다.
심장 내과에 검사를 의뢰했지만 역시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고 약만 두 달치 한보따리를 준다.
당시 11월, 아침마다 운동을 하는 습관대로 운동을 하다가 갑자기 심장 발작이 일어났는데 새벽길에 사람은 아무도 없고, 핸드폰도 없이 불안이 엄습해 오는데 죽을 것만 같았다.
겨우 걸음을 옮기다가 지나던 청년의 도움을 받아 집에까지 왔는데 ,
그때부터 방에 누워 있으면 불안하여 안절부절 ..어떻게 표현 할 수 없는 불안과 답답함, 어지러움에 도무지 견딜 수가 없고, 그냥 맨발로라도 밖으로 달려 나가고 싶어진다.
평소 친하게 지내오던 이웃과 누님들조차 내 옆에서 이야기를 하면 더욱 불안해지고, 급기야 내 주위에 접근 금지령이 내려져 우리집에 발을 끊고, 식구들은 숨소리조차 조심 한다.
교회 목사님이 나의 증세를 종합 하여 인터넷으로 검색한 결과 ‘공황장애’ 같다고 몇몇 자료들을 뽑아 주는데, 나의 증세와 똑같다.
다음날 즉시 병원 정신과로 달려가 의사와 상담 결과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고, 약물 투여를 시작.
의사의 말로는 공황장애로 죽은 사람도 없고, 미친 사람도 없고, 폐인 된 사람도 없으니까 걱정 말고 부지런히 지시대로 약을 복용 하란다.
그런데 문제는 처방 해 준 약이 처음부터 아무 효험이 없는 것이다.
1주일치 약을 처방 받았지만 3일 만에 다시 가서 증세를 말하니 추가로 약을 더 처방 해 준다.
그러나 나의 공황장애 증세는 더욱 심해져 가고, 특히 오전 시간은 불안함 때문에 어쩔 줄 몰라서 신음 하며, 추운 밖에서 무작정 걸으며 “하나님, 하나님!! 어찌하여 내게 이런 일이..”하며 탄식만 흘러 나온다.
이즈음 나는 교회의 모든 공식 행사는 참석 할 수 없었고, 공공 장소, 심지어 마트나 은행 일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1개월, 2개월, 3개월.. 처방약은 갈수록 단위만 높아져 가고, 나의 육신은 점점 죽어 가는 느낌이 들어 의사에게 문의 하면 이제 효과가 있을 때가 되었는데 이상하다고만 한다.
이제 나는 밥도 못 먹고, 죽도 억지로 먹으며 겨우 연명만 해 간다.
약 때문에 위장을 다 버리고, 식도, 목구멍, 편도선까지 염증으로 말도 잘 못하고, 위로 차 오는 사람이 있으면 더욱 불안 하고, 어느덧 내 옆에는 아내 외에는 접근 금지.
또한 하루 종일 불안함 속에 살다 보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방바닥을 치며 통곡 하며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목 염증 때문에 이비인후과를 다녔는데 이중으로 죽을 지경 이었다.
이즈음 나의 심정은 죽으면 좋겠는데 자살은 할 수 없고, 사고라도 생겨 죽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 뿐이었다.
이때 나의 마음에 결심이 생겼다.
아! 이 약을 먹으면 결코 치유 될 수 없다. 사는 길은 약을 끊는 것이다. 그래도 안되면 죽자. 아! 벧엘 수양원이 있는 하동으로 가자. 그곳에 가서 죽자.
망설임 끝에 전화를 했더니 방이 없단다.
며칠 후 다시 전화 했더니 방이 없지만 그래도 한번 와 보라는 말에 목사님과 장로님의 부축을 받고 승용차 편으로 난생 처음 하동 벧엘 수양원에 왔다.
참 아름다운 곳인데, 나는 이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아무 흥미도 없었다.
다만 어떻게 죽을 것인가만 생각했다.
최원장님과의 상담:
어떻게 오셨습니까?
죽으러 왔습니다.
죽으러 왔으면 빨리 낫겠네요.
(용기가 생긴다)
1주일 과일식 하세요.
(눈 앞이 캄캄하다)
아! 나는 이제 이렇게 죽는구나!
나의 몸은 약물로 허약해져 있었고, 그마저 과일만 조금 먹고 연명 하라니 살기는 틀렸다.
어차피 죽으러 온 사람이니 어떠랴
약도 먹지 말란다.
순종 하기로 했다.
그래 약을 끊어야 빨리 죽지..
첫날부터 약을 끊고, 과일 조금씩 3끼...
나 자신과의 싸움에 돌입했다.
죽으려는 각오가 서 있으니 아무 두려움이 없었다.
약을 끊고 나니 잠이 오질 않는다.
그 숱한 날들을 약이 잠을 재웠구나 싶으니 소름이 끼친다.
왠 밤이 그렇게도 길까
옆에서 잠을 자고 있는 아내가 밉다.
시계 소리는 저렇게도 시끄러울까
캄캄한 가운데 침대에 기대어 무릎 꿇고 몽롱함 속에서 밤새 드린 기도는 ‘예수님, 나의 병을 고쳐 주시렵니까, 나를 죽이시렵니까?’ 이런 내용 이었다.
때로는 나의 과거에 잘못한 것들을 생각하며, 특히 아내에게 잘못한 것들이 떠올라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나중에 아내에게 직접 눈물로 용서를 구하기도 했다.
사실 이런 것들은 평소에 결코 해 보지 못했던 짓(일)이었다.
계속되는 이곳 수양원의 생활 사흘, 나흘, 닷새...여전히 잠을 자지 못해 몽롱했지만 분명한 것은 공황장애 증세가 첫날부터 없어졌다는 것이다.
약물로 인한 위장과 식도, 목구멍 염증과 불면 때문에 밤마다 이중고를 겪었고, 엿새째 되는 날에는 온 몸에 오한이 나고, 노출 되어 있는 얼굴·손·발이 시리고, 아프고..형용 할 수 없는 고통이 나를 괴롭혔다.
엿새째 되는 날엔 동서 내외가 문병차 왔지만 10분도 안되어 내어쫓고 말았다.
이 즈음 나는 툭 하면 원장님을 찾아가 상담도 아닌 질문들을 했고..어린애 같이 귀엽다는 말만 듣고...
7일째 되는 날부터 잠을 약간씩 자기 시작 했다.
이제야 실토 하지만 잠이 안와서 원장님께 맡겨 두었던 약을 두 번 훔쳐 먹고 얼마나 후회 했는지 모른다.
아침·저녁 예배는 한 번도 빠지지 않았고, 산행도 하루 두 차례 꼭 강행했다.
예배당에 갈 때는 추워서 내의 두벌에 방한복 입고, 마스크 쓰고, 방한모자에 장갑에 ..그 몰골이 오죽했으랴
집회 때 마다 몽롱한 상태였지만 한마디씩 말씀의 쐐기가 나의 심령에 박히기 시작한다.
7일째인가, 8일째인가 콘크리트 포장된 산책로를 걷다가 수양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지점에 이르러 나의 기도가 시작되자 갑자기 눈물이 쏟아진다.
‘주님, 나를 죽여 주십시오, 살기 싫습니다.’
수양원을 바라보며 얼마나 절규 하였는지, 그때 나는 야곱이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한 경험을 그때 한 것 같다.
한참 후 가슴이 후련 해 지며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 했다.
그날 후로 급격히 병세가 호전됨을 느꼈다.
나를 불쌍히 보신 하나님의 치유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20일째. 이제 살것 같다. 집에 가고 싶다.
원장님은 더 있어야 된다고 하신다.
그러나 나는 20일 만에 집으로 출발했다.
원장님의 말씀이 여기서 같이 일 하자고 하신다.
나는 25년째 재림공원에서 일하던 사람이다.
마음에 깊은 감사를 묻고, 집에 가서 결정 하기로 했다.
집에 가서의 첫날은 기분 좋게 넘어갔다.
음식도 벧엘식으로 절제하며, 식사 초대도 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틀째만에 다시 불안이 엄습해 온다.
벧엘 동산의 맑은 공기가 마시고 싶다.
그곳에 가야 산다.
급히 아내에게 이삿짐을 꾸려 내려 오라 하고, 나만 먼저 교회 집사님의 도움으로 이곳 벧엘 동산으로의 탈출을 결행 하였다.
즉, 1진으로 이사를 온 셈이다.
1주일 뒤에 증세는 깨끗이 사라지고, 기분 좋은 생활의 연속..
벧엘 동산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이제야 보이기 시작한다.
24년 동안 정들었던 곳 송우리를 떠난다는 것은 큰 결심이고, 정들었던 교우들과 특히 돌보던 연약한 성도들의 아쉬운 작별의 눈물을 잊을 수 없다.
이분들 다 천국에서 꼭 만나기를....
나의 인생 3막 중 36세에 예수님을 영접한 삶이 인생 2막이었다면, 이 곳 벧엘의 생활은 인생 3막이라 생각한다.
이제 나의 나이도 육십대 중반.
이곳에서 인생 3막을 마무리 해야겠다.
죽으려고 왔다가 이곳에 살러 온 나와 나의 가족. 하나님의 기이하신 섭리.
나를 위해, 또한 세상에서 영육으로 병든 영혼들을 위해 20여년 전에 이곳 벧엘 동산을 예비 해 두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녁 노을이 더욱 붉게 물들어 아름답듯이, 나의 인생 3막을 아름답게 장식 해야지.
이제 진정으로 남을 위한 봉사의 생애를 살아야지.
더욱 하나님과 가까이 생애 해야지.
최차순 원장님의 걸어 오신 주님과의 동행을 통해 수많은 영혼들의 생명을 건져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2009년 5월 박장우
추서: 한 가지 꼭 기술하고 싶은 말씀은, 세상에는 기적이라고 하는 일들이 이곳 벧엘 수양원에서는 상식으로 통한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4 | 하나님께 드리는 편지 - 김구환 장로 | 벧엘 | 2009.07.28 | 20332 |
13 | 벧엘에서...- 서은비 학생 | 벧엘 | 2012.01.22 | 19282 |
12 | 재발성 구내염 (자가 면역증) | 벧엘 | 2010.02.01 | 16644 |
11 | 삶의 고통에서 건져 주신 예수님 - 서미숙 집사 | 벧엘 | 2011.03.06 | 13417 |
10 | 류마티스 관절염에서 진행성 위암까지 | 벧엘 | 2011.08.27 | 13147 |
» | 죽으러 왔다가 살러 온 사람-공황장애 | 벧엘 | 2009.05.14 | 12476 |
8 | 사구체신염 | 벧엘 | 2011.10.12 | 11325 |
7 | 임파선.갑상선암 - 채금순(중국 북경) | 벧엘 | 2012.04.19 | 10232 |
6 | 우울증,요실금 | 벧엘 | 2011.08.27 | 10224 |
5 | 벧엘을 다녀가며... | 벧엘 | 2011.07.12 | 9819 |
4 | 우울증, 골다공증 | 벧엘 | 2011.08.27 | 8934 |
3 | 주님 은혜 크셔라 - 이상익 (시인. 새길동산노인요양원 이사장) | 벧엘 | 2013.09.09 | 8689 |
2 | 탕자 중의 탕자 (보성읍 교회 민재현 ) | 벧엘 | 2013.09.09 | 7659 |
1 | 평안 - 한준이 | Bethel | 2016.06.19 | 1548 |